눈을 떴다. 앞에 둥그런 달이 떠 있다.

‘웬 달이지?’

 

까만 밤하늘에 하얗고 둥그런 달이 동그라니 떠 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보인다. 바람이 춥다. 정말 춥다. 그러고 보니 나는 바닥에 누워있다. 차가운 땅바닥이 딱딱하게 느껴진다. 한기가 심하다. 나는 덜덜 떨면서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지만 달빛과 나무 외엔 아무것도 없다.

 

‘내가 여기 왜 누워 있는 거지?’

 

내가 이 시간에 숲에 있을 리가 없는데, 여기서 누워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나무 하러 왔다가 잠들었나?’

 

곧 있을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나무를 비축하느라 바쁜 계절이기는 하다. 아무래도 나무 하러 왔다가 피곤해서 잠시 누웠다가 깜빡 잠이 들어서 심하게 잠들었나 보다.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빨리 내려가야겠다.

 

나무를 찾아가려고 나무짐을 찾아봤지만 나무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무 하러 온 것도 아니면 대체 나는 무얼 하러 온 것이고, 여기 왜 이 시간까지 있는 거지?

 

......헉!

주위가 숲속이라 시야가 가려져서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상한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앞에 있던 나무 뒤로 숨었다.

 

‘저게 뭐지?’

 

나무 뒤에서 얼핏 훔쳐보기엔 사람의 형태이긴 한데, 이상하다. 다리는 어딘가 다쳤는지 질질 끌고 있고, 팔은 걸을 때마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덜렁대고 있다. 나무 뒤에 딱 붙어 머리만 내놓고 자세히 보니 눈의 초점이 명확하지 않고 되는대로 그냥 앞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갑자기 역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당장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왔지만 걸리면 큰일 날 것 같아서 구역질을 억지로 참았다. 나는 나무 뒤에 등을 딱 붙이고 섰다. 더 이상 보다가는 저 끔찍한 것들에게 걸릴 것 같다.

 

'이건 대체 뭐지? 사람인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짐승은 아니고.‘

 

그나저나, 집에 내려가야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내려가야 하지? 걱정이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눈물이 난다. 아내가 기다릴 텐데. 내려가야 할 텐데.

 

바보, 겁쟁이 같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무섭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챙겨야 한다. 힘을 내자.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불빛도 보인다. 눈물을 다시 닦아내고 자세히 보니, 우리 마을인 것 같다. 아. 이곳이 어디인지 알 것 같다. 마을 뒤에 있는 뒷산이다. 내가 어릴 적에 그렇게도 많이 놀러 다니던 곳. 내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자, 일단 한숨이 놓인다. 전혀 모르는 곳은 아니다. 이제 조심해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빨리 내려가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무언가 내 머리를 때리듯이 생각나는 게 있었다.

 

'구울......!!!'

 

흑마법으로 시체를 살려내서 만든다는 구울. 좀비와 비슷한 종류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좀비보다는 더 지능적이고 포악하면서 공격력도 강한 편이라고 괴물도감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 시장에 갔을 때, 최근 마을 뒤쪽 숲에서 구울이 목격된 적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구울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어느 미치광이 마법사가 만들어 낸 건가. 맙소사. 빨리 마을에 내려가서 교회에 알려야겠다.’

 

내려가자. 빨리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밝은 길은 위험하다. 큰 길에서는 구울들에게 발각될 확률이 크다. 어쩔 수 없이 숲 속의 좁고 작은 길들로 가야한다. 어릴 때 어른들에게 혼나면서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산인지라 길은 다 알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잘 아는 길이라 좁고 어두운 길이라도 잘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더욱 더 다행인건 오늘 달이 밝은 보름달이라는 사실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보름달 빛 정도면 길을 보기엔 충분하다.

 

내려갈 수 있는 제일 빠른 길은 여기 말고 다른 쪽에 있어서 다른 쪽으로 일단 먼저 갔다가 내려가야 한다. 그 곳으로 이동하려고 주위를 살펴보니 무언가 작은 봉우리들이 많다. 무덤이다.

‘왜 하필 이 밤에 묘지에 있는 거지? 하아. 정말 오늘 왜 이런 거야. 빨리 내려가야겠다. 완전 옴붙은 날이야.’

 

얼른 이 끔찍한 산을 내려가야겠다. 구울들에게 발각될까봐 주위를 살펴보면서 조심조심 내려왔다. 길을 내려가면서 힐끗힐끗 보이는 큰 길에는 구울들이 가끔씩 보인다. 띄엄띄엄 보이긴 했지만 자주 보이는 걸로 봐선 생각보다 수가 많은 것 같다.

 

'어떤 놈이 이따위 미친 짓을 한 거야.'

 

아무래도 어떤 마법사가 미친 짓을 한 것 같다. 빨리 마을에 알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 진짜 왜 이런 숲속에 혼자 있는 거지? 이전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빨리 내려가자

 

익숙한 길 덕분에 금방 내려갔다. 마을이 보인다. 마을에는 다행히 구울이 돌아다니고 있지 않다. 밤이 깊었는지 거리에는 달빛만이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달이 중천에서 한참 기울어서 서쪽으로 내려 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늦었어도 나는 교회에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일단 집에 들러서 물 한 잔 마시고 교회로 가야겠다.'

 

집은 마을 가장 자리에 있다. 안에는 불이 밝혀져 있다. 빠알간 나무 불빛이 새어나온다. 따뜻한 불빛.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아내. 기다린다고 걱정이 많겠다. 빨리 가서 안아줘야겠다.

 

"똑똑“

여보. 어서 문 열어줘.

"똑똑"

어서 빨리.

"똑똑"

당신을 안아주고 빨리 교회로 가 봐야할 것 같아.

 

"끼이익"

문이 열린다.

 

“꺄아악!!!!!!!!"

비명소리.

 

왜? 왜? 왜? 내 뒤에 구울이 있는 것인가?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

아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문을 닫을 생각조차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그 상태로 뒤로 계속 기어가고 있다. 완전히 겁먹은 표정이다.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다.

 

"여보, 문 닫았으니까 걱정마. 위험한 건 아무것도 없어."

 

안심을 시켜주기 위해 말을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소리를 지고 있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다 실신할 지경이다. 왜 그러지?

 

"와장창!"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근처 대도시의 성기사님이 문을 부시고 들어왔다. 큰 성에 있는 교회를 갔을 때 몇 번 먼 발치에서 뵌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참 멋진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예전에 나에게 교회 열심히 다니라고 말씀도 해주신 적이 있다. 그나저나 여기엔 무슨 일이신거지?

 

‘아, 그래. 구울이 부활 했으니 그것부터 말씀드려야겠다. 성기사님이 알아서 잘 처리해주시겠지.’

 

"저기, 성기사님, 여기 마을 근처에.."

 

퍽!

뭐......뭐지?

나는 천장에 일렁거리는 불꽃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다. 왜 내가 천장을 보고 있는 거지?

 

퍼억

아내가 울고 있다. 어서 달래줘야 하는데. 위험은 없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왜. 왜. 왜.

 

왜 나는 천장을 보고 있는 거지?

 

퍽!

 

나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나는 아내를 안아줘야 하는데. 내 사랑하는 아내. 내 사랑.

 

 

 

"놀래셨죠?"

“......어흑흑흑"

"충격이 심하시겠습니다. 이런 것이 집안에까지 들어오다니요. 하아. 웬만하면 집을 시내 쪽으로 옮기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흑흑흑......"

 

"휴...... 그래도 그나마 놀래기만 하시고 끝난 게 다행입니다. 제가 주위를 순찰중이어서 빨리 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부터 구울들이 마을을 염탐하더니 결국 오늘은 이렇게 마을 안에까지 들어왔네요. 이놈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빨리 알아내서 처리를 해야겠습니다. 일단 병사들을 불러서 이 냄새나는 고깃덩어리들부터 치워드리겠습니다."

".......흑 정말 놀랬어요. 노크 소리가 나길래 며칠 전에 사라진 남편인가 싶어서 문을 열었는데 저런 이상한 게 들어와서......"

 

"앞으로는 문 함부로 열지 마시고, 왠만하면 시내쪽으로 이사가시길 바랍니다. 여자분 혼자서 이런 외곽지역에 사는 건 아무래도 위험합니다."

"...... 일단 남편의 행방부터 좀 알아보구요."

 

"그래도 일단 오늘은 시내에 있는 교회에 가서 주무시죠. 병사들도 지키고 있는데다, 신께서 함께 하시는 곳이니 구울 따위들은 함부로 침범하지 못한는 신성한 곳이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샌슨, 칼. 둘이서 이 부인을 안전하게 교회로 모셔다 드리게. 나는 일정 따라서 순찰을 계속하고 있을 테니, 모셔다 드리고 성문 앞에서 나에게 보고하도록.”

 

여자는 병사들을 따라나가다가 문득 뒤돌아 본다.

“저기 그런데 성기사님.“

“네? 왜 그러시죠? 교회에 가시는 게 불편해서 그러시는 거면 제가 소개장을 써드리죠. 지금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신성한 교회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사실은 저 괴물이 들어와서는 저를 공격한 게 아니라 그냥 저를 보고 있었거든요. 마치 저를 아는 사람인양. 그런데 원래 저 괴물은 원래 저렇게 온순한 건가요?”

“그럴리가요. 무언가 잘못 아신 게 틀림없습니다. 저 괴물은 구울이라는 괴물로 아주 위험한 괴물입니다.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온순하기는커녕, 포악한 생물인데다, 죽은 시체를 살려내서 만든 것이라 끔찍한데다 역겹기지 한 괴물입니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오늘은 일단 교회에 가서 쉬세요.”

 

“네. 감사합니다.”

 

여자는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 집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저 괴물. 냄새가 역한데다 다시 보니 아까 놀랐던 것이 떠올라 몸이 부르르 떨린다. 하지만, 성기사의 말처럼 역겹거나 징그럽다, 위험하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왠지 친숙하다.

 

‘왜 그렇지?’

 

“부인. 어서 가시죠. 빨리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저것들이 또 나타난다면, 위험하니까 빨리 이동하시지요.”

 

병사들이 부인을 재촉한다. 여자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가, 병사들을 따라 나간다. 여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구울 시체 위에 불꽃 그림자가 괴괴하게 비친다. 달은 어느새 서쪽으로 더 많이 기울었다.

 

 

 

 

 

 

 

 

 

 

 

 

 

 

 

 

 

2009/10/26 18:43 2009/10/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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